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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스의 미장센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by 이리와 안아줘 2024. 6. 12.

키스의 미장센 [이주은의 유리창 너머]

입력2024.06.09. 오후 2:38
수정2024.06.09. 오후 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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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드바르 뭉크, ‘키스’, 1892, 캔버스에 유채,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이주은 | ​미술사학자·건국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사기꾼 여자(천우희 분)와 초능력자 남자(장기용 분)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드라마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을 10회까지 본 상태에서 이 글을 쓴다. 지난 주말에 12회로 종영했지만, 나는 아직 결말을 모르는 상태다. 남자의 집안은 초능력 유전자를 가지고 있는데, 지금은 마치 저주에 걸린 것처럼 정신적이고 신체적인 문제가 생겨 초능력을 발휘하지 못한다. 할머니는 예민해서 잠을 통 이루지 못하고, 아들은 우울하여 술에 의존하며, 딸은 폭식으로 인해 뚱뚱해졌다. 손녀는 학교에서 외톨이 투명 인간으로 지낸다.

동화라면 진정 사랑하는 이가 나타나 키스 한 방으로 저주가 풀어질 텐데, 이 가족에게 접근한 자가 하필 사랑 사기꾼이라니. 10회는 마지막으로 사기를 치고 숨어 버린 여자를 수수께끼를 풀 듯 어렵사리 찾아낸 남자가 ‘너 없는 건 안 돼’라며 바닷가에서 끌어안고 키스하는 장면으로 끝났다.

한국 멜로드라마가 매력적인 이유 중의 하나는, 아름답고 감동적인 키스 연출에 있다. 극 중 키스는 단순히 애정 표현에 그치지 않는다. 주인공의 감정 대립, 운명의 엇갈림 그리고 그동안 쌓였던 온갖 종류의 의심과 오해가 그 장면에서 눈 녹듯 사그라들도록 의도되었기 때문이다. 키스는 두 사람을 둘러싸고 벌어진 갈등 구조가 완벽히 해소됨을 뜻하며, 곧 두 사람이 사랑으로 구원되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미술작품 중에서 명품 키스를 꼽자면, 구스타프 클림트의 그림 ‘키스’가 가장 먼저 떠오른다. 황금으로 빛나는 바탕에 화려한 패턴의 천 자락이 화면을 대부분 채우고, 그 위로 남자의 품 안에 폭 싸여 두 눈을 살포시 감은 여자의 하얗고 조그만 얼굴만이 드러나 있다. 여인의 표정 하나만으로도 더 설명할 필요가 없는, 키스의 황홀함과 관계의 충만함을 보여주기에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그림이다.

오귀스트 로댕이 매끄러운 피부 느낌을 주는 하얀 대리석으로 실물 인체 크기에 가깝게 조각한 ‘키스’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키스 명장면이다. 작품 속 인물은 단테의 ‘신곡’에 등장하는 불운한 연인 파올로와 프란체스카인데, 사랑해서는 안 될 상대에 대한 억누르던 연정이 욕정으로 폭발해 버린 순간을 담아냈다. 돌발적 키스로 인해 둘은 단칼에 베이는 죽음을 맞이하게 되니, 처음이자 마지막이 되어버린 치명적인 키스라고 할 수 있다. 로댕은 호불호가 갈릴 만한 실험적인 신작을 발표할 때면 그 옆에 만인이 좋아하는 ‘키스’를 갖다 놓았다고 한다. ‘키스’를 본 관람자들이 혼이 쏙 빠져 신작에 대한 비판력을 잃도록 말이다.

클림트의 ‘키스’와 로댕의 ‘키스’는 항상 키스 명장면 1등을 두고 자리를 다툰다. 하지만 3위부터는 후보가 여럿이니, 일일이 소개하지 않아도 될 듯하다. 대신 이번에는 좀 색다른 키스 장면을 가져왔는데, 외롭고 상처 많은 현대인의 모습을 대변하는 미술가, 에드바르 뭉크(1863~1944)의 ‘키스’(1892)이다. 어느 영화의 한 장면처럼 유리창 구석의 커튼에 기댄 그림 속의 남녀는 표정도 보이지 않아 모호한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둘은 어떻게 만난 사이이고, 여기는 누구의 집이며, 키스 후에도 이들은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될까? 왜 이들은 무언가에 쫓기는 듯 다급해 보이는 것일까.

키스하는 남자가 뭉크 자신이라면, 쫓기는 이유는 불안 때문일 것이다. 뭉크는 어려서부터 죽음에 대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어머니는 결핵으로 일찍 죽고, 어머니처럼 의지하던 누나마저 결핵으로 죽은 후 그는 사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모두 떠나버리는 무서운 세상을 그는 사랑할 수 없었다. 여자를 만나고 애정을 느끼는 순간에도, 심지어 키스를 할 때조차, 뭉크는 집중하지 못한 채 이별 후 남겨질 준비를 했던 것이다. 사랑 후엔 어김없이 상처와 깊은 절망이 찾아오리라는 것을 예지했기 때문이다. 뭉크는 남녀가 함께 있는 모습과 키스의 주제를 여러 점 남겼지만, 실제로는 구원받지 못한 자신의 외로움을 그린 것이었다.

타인은 물론 나조차 알 수 없고 통제 불가한 세상에서 우리는 그늘진 삶에 한 가닥 빛이 되어 줄 무언가를 막연히 기다리며 산다. 하지만 때로는 사랑조차 무기력할 수도 있다. ‘히어로는 아닙니다만’의 마지막 두 편에 어떤 키스 장면이 나올지 궁금하다. 이미 드라마의 결말을 시청하신 독자라면 살짝 귀띔하고 싶겠지만, 나도 그 무렵엔 지금이 아닌 미래에 있을 거다.

한겨레 hanidigitalnews@hani.co.kr